쉬는 첫날이다.
오늘은 처음가는 길인 배내골에서 영축산을 올라보고자 한다.
지난번 가지산행 때 넘겨다 본 고개 넘어가 궁금했기에
망설임 없이
이번엔 배내골을 선택했지만 설레는 마음은 어쩔수 없다.
아침 밥상을 담으며 카메라 설정을 바꿔본다.
오늘은 P'모드로 담기로 한다.
(결론은 빛이 너무 많이 들어와 별로였다...ㅎ)
아침을 먹고
주섬주섬 챙겨 아내 운동하러 가는시간에 맞춰 출발한다.
별써 10시가 다가온다.^^
처음으로 가는 배내골'에서의 산행이다.
가장 손쉽다는 청수좌골'을 선택했는데 들머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았다.
종점상회를 지나쳐서 되돌아 왔고
입구부터 신불산 자연휴양림 입구 공사로 파헤쳐있어 차량 출입도 못해
들머리를 한참만에 찾았다.
공사 현장을 이리저리 헤매다
공사로 먼지에 감춰진 청수골 산장을 찾았다.
산장앞에는 비 때문에 망가진 다리를 놓고 있었다...?
산장 앞 물레방아는 얼어서 고드름이 달려있다.
좌측으로 돌아 오르니 바로 등로가 열려진다.
산행기에서 많이 봐 왔기에 낮이 익었다.
산길로 벗어나기전에 멋진 개들이 짖어
처음 오는 길손이라 아는체를 한다. 멍멍~~~!!(왼족으로 간다)
들머리부터 가을에 왔으면 좋았겠다.....한다.^^
11시가 넘은거 같은데
이곳은 이제 햇살이 산넘어 고개를 내민다.
멋진 바위도 만다고
돌탑을 만난다?
(산행을 마치고 나니 이곳이 아마도 단조산성에 이은 초소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잠깐
산위에 올라 조금전 돌탑주변을 담아본다.
조난신고 표지판
중간쯤인가보다...한없이 골짜기로 조금씩 조금씩 오르막길이다.
너덜지대도 만나고
오늘은 골짜기에 온통 너덜지대 바위길이 많다.
내려갈때도 그렇구~~~~!!!
군데군데 커다란 바위도 만난다.
오른쪽은 청수좌골이라
저아래 깊은 아래서 물흐르는 소리가 간혹 들린다.
산책길 같이 오늘은 편한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얘들은 서로 좋아서 죽는다.
아니면 힘자랑을 했을까? ㅎㅎㅎ
이곳도 여지없이 칼맨?이 지나갔다.
나무가지에 매단 리본을 뜯어 팽게쳤다.
차라리
나뭇가지에 달려있으면 보기 싫지나 않지
어떤 고집이 있어
저지랄인지 모르겠지만 뜯을꺼면 잘 챙겨서 휴지통에 버려야지...ㅠㅠ
그렇게 숨차지 않고 느긋한 오르막이라
이곳저곳 멋지게 생긴 나무가지를 담아본다.
멀리 오르막길쪽에 하늘이 보였다.
산등성이 모양이 아는데가 없다.
아직 멀었구나 ....한다.^^
짜식 튼실하게도 생겼다.
바위 꼭대기엔 이름모를 이끼가 잔뜩 올려져 있고
한번 더 올려봐도
참~~
많이 아쉬운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쓰레기를 내다 버린 짓거리하고 뭐가 다르단 말인가!!!
하나씩 주어 담아 오지 못한 나도
같은 종류'겠지....ㅠㅠ
운치좋은 소나무도 만나고
산죽밭도 끼도 돈다.
겨울이라 옷을 벗어 골짜기가 훤하다.^^
또다시 만나는 돌빵구 너덜길
벌써 정상인가?
억새밭인가?
헉~~!
멀리 능선이 보인다.
영축산에서 오룡산 능선인가보다.
능선에 올랐는데도 키보다 높은 억새풀 골짜기를 지난다.
왼쪽 멀리
신불산 정상이 보인다.
앞에는 신불평원이 펼쳐지고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세워본능이 발동했다.
저 멀리 신불산 정상이다.^^
억새밭 길을 걸어간다.
신불평원에서 본 동서남북
그래도 온전히 남아있는 리본은 부산일보밖에 없는데
혹시 부산일보 산행팀이 저지른 만행????
단조산성'터가 눈에 어른거린다.
단조산성 맞나?
쭉~~~단조산성터가 이어진다.
[단조산성에 대한 자료를 퍼온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을 침략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한양으로 가는 길을 두 갈래로 나누어 진격했다.
1진은 부산에서 울산, 경주를 지나 내륙의 중앙으로 북상하고 2진은 전라도에서
광주, 전주를 지나 서북방면으로 북상했다.
우리 고장은 이 전쟁에 1진의 선봉대와 격렬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그래서 우리 고장은 전쟁에 따른 피해가 매우 큰 곳으로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흔적들
이 곳곳에 남아 있다.
왜군은 부산의 동래성을 점령하고 이어서 양산을 지나 언양을 거쳐 경주로 진군하려고 했다.
초기 전쟁에서 관군은 왜군의 총포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울산지방에서는 의병(義兵)들이 왜군의 앞길을 막고 싸우게 되었다.
북으로 진군하는 왜군은 언양 일대에서 싸우게 되는데 그 중 한 곳이 단조성(丹鳥城)이다.
이곳에서 의병들은 왜군의 진격을 저지하기로 하고 배수진을 치게 된다.
이 단조성은 신불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영취산으로 이어져 있으며
억새평원을 지나면 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성은 전형적인 산성(山城)으로 적의 침입에 적은 인원으로 방어를 하기가 좋은 천연적인 요새이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북으로 진격을 하다가 이곳 단조성에서 의병들의 강력한 저항에 진격을 멈추게 된다.
그러나 왜군은 결국 성의 취약지인 서편에 있는 백발등으로 입성해 성을 결국 함략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끝까지 싸웠던 의병들은 전멸을 했다고 하나 그 숫자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당시 의병들이 흘린 많은 피가 못을 이루었고 단조성 아래의 진풀에는 붉은 이끼가 있어 이는
의병들이 흘린 피 때문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취서산에는 억새풀이 많은데 이 억새는 가을이면 백발처럼 흰 빛을 띠기 때문에 이 언덕을
백발등이라 불렸다. 이 지역에는 백발등에 대한 노래가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백발등이 원수로다... ”
가을이면 흰 억새풀이 바람에 휘날리어 슬픈 노래를 들려준다.
이 곳을 지날 때면 귀를 기울여 들어 보라, 그 처절한 순간들의 숨소리가 이명(耳鳴)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 글 김 봉 대 -
이곳에 의병?들이 아우성이 들리는 듯 하다.
들여다 봐도 그냥 돌탑내부
쭉 이어진 단조산성터
끝없이 펼쳐진 신불평원
함박등쪽인가 보다.
신불산쪽이고
영축산 넘어 안부까지 단조산성터가 그려진다.
[또다른 단조산성 이야기]
가천리(加川里)는 본래 언양군 중남면의 지역으로서 들에 내(川)가 있으므로 야천(野川)
또는 ′들내’라 불렀고, 이것이 변하여 덜내.가천이 되었다.
신불산정상에는 폭3m, 길이3㎞쯤 되는 석성이 있다. 이 성안에 우물(天池)이 열개나 있었는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비가와도 물이 넘치지 않고 변함이 없었다 한다.
단조(丹鳥)란 머리가 붉은 학을 말하는데, 산성 의 모습이 마치 목을 길게 뽑아 세운 학처럼 생겼다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또한 신불산 은 천지개벽 때 해일이 일어나 산꼭대기를 단지만큼만 남기고는 모두 물 에
잠겼기 때문이라고 하고, 영조 3년(1727) 무렵 암행어사 박문수가 영남을 돌 때 단조성 에 올라와
성을 보고는 ‘산성의험준함이 한명의 군사가 능히 만 명을 대적 할 수 있는 곳’이라
하였고,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도 이 성을 쳐다보고는 ‘마치 하늘에 붙은 성 같다.
조선에 성이 없으랴만 이 성마저 잃을수는 없다’고 하면서 난공불락의 성이라 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성이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하여 어이없이 함락 당하고 말았다.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한 노파의 아들이 왜병에게 포로가 되었다. 왜병들은 그 노파에게 만약 단조성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면
아들을 살려 주겠다 하였다. 노파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단조성으로 가는 비밀통로를 알려 주었다.
왜병들이 단조성 서쪽 산성으로부터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후문을 불의에 기습하니 우리 쪽 병사들은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태연하게 동쪽낭떠러지 아래쪽만 경계하고 있다가 제대로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몰살을 당했다고 한다.
안부에 도착하니
산성 모양이 다르다. 임진왜란때 사용했나보다.
멀리~~~영축산 정상이 보인다.^^
신불 평원은 끝이 없고
내려온 단조산성터
근처엔 억샌 나무가 자리잡고
평원엔 억새가 되어 그렇게 조용하던 골짜기가
이곳에 오르니 아우성이다.
볼때기 떨어지겠다.
단조산성터와 어우러진 영축산 정상
평원과 멀리 신불산
다시 금빛 억새와 영축산
멀리 영축산 오른쪽
오룡산 쪽~
신불평원
가을 은빛 억새가 겨울 금빛으로 바뀌었다.^^
억새평원과 신불서능?
넓은 방화선을 따라 영축산으로 향한다.
신불평원 중앙쯤 되나보다.
방화선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멀리 영축산이 보인다.
헉~
금방인줄 알았는데 제버버 거러야 하나보다...ㅎ/
억새가 바람에 휘날린다.
귀때기는 떨어져 나가고~
억새우는 소리에 귀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의병들의 고함소리만 들으려 한다.
억새가 바람에 스치운다.
진짜로 바람이 많이분다.
올겨울 들어 가장 샌 바람을 맞는거 같다.
배낭에 담아온 마스크를 꺼낼까? 말까? ㅎㅎ
조금더 참아보자~~한다.^
조금 더 가까워진 영축산
뒤돌아본 신불평원
1000m가 넘는 고지에 이러게 대평원이 만들어 졌을까?
늘 이곳에 오르면
대자연의 경이롭다는 말을 씀에 망설여지지 않는다.^^
빛이 많아 흐리게 보인다.
아마도 억새풀이 빛나서 일끄야~~ㅎ
정상이 다시 가려지고
신불평원과 신불산
그리고 오른쪽 암릉지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정상을 오르는 길
헐 아직도 멀었다.
다리는 아프지 않지만 바람도 불고
귀때기 시려 얼어죽지만 말자....다짐한다.
정상에 선 산님이 보인다.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지?
바람이 불었는지 억새가 누웠다....
다시금 되돌아본 평원과 신불산
정말 대평원이다.^^
정상도 한걸음 되고
두걸음인가?
정상엔 역시나 돌바위로
오늘은 정말 돌빵구를 많이 밟는거 같다.
대평원의 모습은 자꾸만 담겨지고
왼쪽 검은 길이 단조산성터
가운데 길이 방화선
오른쪽 낭떨어지기 쪽으로 등로가 펼쳐 있다.
왼쪽으로 돌려 단조산성터를 담아본다.
멀리 재약산쪽과 가지산쪽이 보여야 하는데
오늘은
눈구름을 몰고오는지 하늘이 뿌옇다.
정상이다.
많이 추운가?
바위위에 얼음이 녹지 않았다.
안내판 같은데 바람에 쓰러지고
얏호~~~~
정상이다....
통도사쪽에서 올라오는 길이고
영축산 지나 오룡산쪽으로 향하는 능선길
영축산 정상석(1,059m)
통도사쪽 아래는 따듯한지
사람들이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대피소와 함박등 능선
처음으로 오룡산에서 이곳까지 왔던 기억을 되살려본다.
멀었다.....
힘들었다.....
비도 와서 무섭기까지 했다...
바로 아래 비로암'으로 내려가라 해서 내려가는데 정말 바위너덜지대라 무릎관절 다 고장났다...ㅋ/
결국은 통도사내에서
길을 모르고 힘이 들어 천사'를 불러
주차장까지 갔던 기억이 새록인다.
정상에서 바라본 신불평원
오른쪽 천길 절벽
정상석 아래 이정표
갈길을 더듬어 본다.
그림자가 오늘 정상사진을 대신한다.
돌아 내려오며
바람만 안불면 정상에서 점심이랄것도 없지만
빵 한쪼각이라도 먹고 내려올낀데...ㅎ
조금 내려와서
뒤돌아보니 멀어졌다.
사람도 등돌리고 나면 이렇게 빨리 멀어질까????
당겨서 본다.
발아래 천길 절벽이 펼쳐지고
예전에 이곳에서 점심을 먹을땐
아리랑 릿지를 오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겨울엔 릿지를 안하겠지.....한다.
억새는 더 거샌 춤을 춘다.
할수없이 물한모금 축이고
마스크를 꺼내 찬다.
천길 낭떠러지기 근처에도 산성터와
산님들이 쌓은 돌탑이 보인다.
정말 저곳을 오르나? ㅎㅎ
한번 오르고 싶어진다.
되돌아본 영축산
오후 햇살이 가득하다.
아리랑 릿지
에베로 릿지...하던데 확실하게 어떤놈이 어떤놈인지......
평원엔 금빛이 가득하고
자꾸만 되돌아본 풍경은 아름답다.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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